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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
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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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눈물 되어 날리던 날


오롯이 당신 몫으로 남겨진 무거운 삶의 무게 내려놓으시고 꽃길 따라 하늘 향해 가신 나의 어머니. 아버지 먼저 떠나시고 많은 설움과 고통뿐이었을 긴 날들이, 부딪치고 마주쳤던 당신 삶 안에는 피붙이들이 만들어 준 상처도 분명 있었으리라. 



 

2남 4녀의 막내로 자라면서 시대와 다를 바 없듯 아버지는 엄하셨고 특별히 엄마에게도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시거나 다정했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가족보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순응할 줄만 알았던 엄마는 해가 뜨기 무섭게 논밭으로 하루도 허리 펴는 날 없이 일하셨고 종갓집인 큰살림을 맡아 하시면서도 아버지께 단 한번 싫은 내색 하신 걸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안타깝고 가여웠지만 한 번도 엄마의 삶을 이해해 보려 하지 않았다.




엄마의 삶은 어찌 그리 인생길 내내 한겨울 같았는지


2012년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열 평 남짓한 옷가게를 시작했다. 살기 바쁘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혼자 지내신 지 이미 오래였던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지 두 해를 넘기고 그런대로 가게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엄마의 폐암 말기 판정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실 젊은 나이도 아니신데 천년만년 곁에 계셔주실 줄 알았던 내가 이상한 건지 모른다.


서울로 오신 엄마가 오빠 집에서 통원 치료를 하시다가 병원에 입원하셨고 각자의 생활들로 인해 엄마 곁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엄마를 돌봐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살아생전 너무나 불효만 했었으니 돌아가시기 전 무엇이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 가게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없었다. 재정 상태도 최악이었던 터라 가게를 접었다. 2년 6개월의 시간은 참 많은 기억과 아픔을 갖게 했고 조금씩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기대앉은 엄마가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시며 성경책을 달라는 무언의 눈짓을 했다. 색이 변한 비닐 케이스 안에 든 통장을 성경책 사이에서 꺼낸 엄마가 나무껍질처럼 말라버린 입술이 달싹거리자 균열이 생겨 선홍색으로 번졌다.




나는 차마 알지 못했다. 

엄마와의 이별이 성큼 와 있었다는 것을.


“아가, 걱정 말아라. 느그 아부지 죽고, 나온 유족연금 엄마가 뭐슬 알간디? 

암긋도 모르제, 이만저만 해서 반틈인가 나온다고, 

느그 오빠한테도 암말도 안 허고 농협에 다 모타 놨다. 

암말도 말고 언넝 넣어둬!”


아 ~ 다 알고 계셨던가. 혹여 당신 때문이라 마음 아파하시고 속상해하실까.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액이 얼마인지 몰랐지만 죽으라고 원망만 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족연금으로 현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새삼 고마워서 목이 메었는지, 이제 곧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슬픔과 서러움 때문이었는지, 엄마의 이어지는 고통 때문에 엄마를 보는 것이 힘들고 안쓰러워서였는지, 병원을 오가는 길 위에서 나에겐 길었다고 한 번쯤이라도 그리 생각해서 말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처한 현실과 상황에 대한 내 설움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차마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부모가 내리사랑을 줄 때 받으려 한 적 분명 없겠지만 이 빠진 자리처럼 숭덩숭덩 비어버린 자식이란 자리, 저 먼 기억 속의 품 안에 있었던 모습 그리우셨으리라. 그러나 그 아끼던 자식들 각자 생활하며 30평, 50평 아파트에 잘 산다고 한 번씩 얼굴 디밀어 줌에 마치 제 할 일 다 한 듯 며칠간의 시간도 엄마를 위해 쓰지 못하는 자식들이었다. 홀로 이승 떠날 준비 하시면서도 노여움이나 언짢은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으셨는지.




누가 그랬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처음에는 난리 치면서 세상에 있는 효도 다 할 듯, 서로 모신다고 목소리 높이고 입술에 침 튀기다가 시간 길어질수록 행여라도 자신의 몫 될까 염려되어 이유가 길어진다고 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마지막 가시는 날 고통인지 편안함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순간도 최선을 다했는지 지금도 돌아보면 아닌 것 같아 아프게 후회스럽다. 입버릇처럼 형제간에 어우르고 토닥이며 그리 살아가라고 걱정 놓지 못하신 모습, 생의 끝에서 마지막 문 나서기 전, 오로지 자식들 화합 바라셨을 나의 어머니! 아프게 기억되는 날에, 80의 일기로 서러운 삶의 여행을 마치고 홀연히 바람처럼 그렇게 가셨다. 가시고 나니 지지리도 못해 드린 것들만 가슴에 남아 속을 훑는다. 그저 후회스럽다. 왜 이제 서야 이런 생각만 드는 것일까. 




엄마! 편안하신가요 



 


가끔은 그곳에서 맑은 정신 드시면 한 번은 제 머리 쓰다듬어 주시며, 잘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미움 비워내고 마음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리 말씀해 주세요.  


엄마는 내게 이해와 사랑을 가르쳐 주셨고 참는 법을 알게 해 주셨다. 


"엄마, 사랑해 주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9년 국민연금 수기, 일러스트 공모전 장려상을 수상한 홍란님의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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