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세대에 퍼진 국민연금 ‘공포 마케팅’
“이대로 가다간 19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
민간 정책 연구소인 한국경제원이 2022년 1월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1년이 지난 지난해 다시 이 제목과 비슷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제5차 재정계산’ 결과,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2055년 쌓아둔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될 거란 예상이 나오면서다. 1990년에 태어난 사람이 65살이 돼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해다. 기금 소진 기사들은 1980년부터 1994년생까지인 밀레니얼(M)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생까지인 Z세대를 더한 ‘MZ세대’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로 이어진다.
기금이 소진되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공포 마케팅’에 가깝다. 기금 소진 시점 추계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한 ‘레벨 테스트’ 성격이 강하다. 2093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출생률 등 앞으로 인구 구조 변화 상황에서 일정한 기금 수익률로 언제까지 기금이 버틸 수 있는지 예측해 본다. 바꿔 말하면, 그 전에 국민연금 제도를 손보거나, 출생률이 반등하고, 기금 수익률이 올라가면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출 수 있다.
| 점차 오르고 있는 국민연금 수급 금액
국민연금 제도가 오래되면서 그만큼 장기간 가입자도 늘어난 까닭에 국민연금 수급 금액도 점차 오르고 있다. 2000년만 해도 1인당 국민연금 노령연금은 월 24만 6,000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3월 기준 수급자가 받은 평균 노령연금은 월 64만 7,292원이다. 실업 이후 구직 이나 자녀 출산, 군 복무 기간 등을 국민연금 가입한 것으로 추가 인정해 주는 크레딧 제도를 통해 가입 기간이 늘어나면 연금 수급 금액이 올라간다. 여기에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저소득 지역가입자와 소규모 사업장 등에 보험료를 지원해 주는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제도만으로 MZ세대 신뢰를 얻는 데엔 한계가 있다. 현행 국민연금법 제3조의2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 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 제도인 만큼 국민연금 지급 중단 사태는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에 지급보장을 조금 더 구체화하자는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제화’ 주장이 반복된다. 복지부도 정부의 책임 범위를 법에 더 명확하게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적정 수준의 노령 연금 수령 금액과 보험료 납부 부담에 대한 고민
노령연금 수급 금액 월 64만 원도 노후에 생활하는 데 최소 금액에도 못 미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제9차(2021년도)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 준비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50대 이상은 노후에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최소 월 124만 3,000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적정 생활비는 177만 3,000원이다. 국민연금 평균 금액과 1.9∼2.7배 차이가 난다. 게다가 국민연금 지급액 수준을 나타내는 ‘소득 대체율’은 1988년 연금 도입 당시 70%에서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개혁을 거쳐 2028년 40%까지 내려간다. 40년 가입한 사람들의 월평균 소득 대비 70% 지급되던 연금액이 40%로 낮아진다는 얘기다.
지원 사업에도 매월 내는 보험료 부담은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월 소득(근로·사업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낸다. 과도한 경쟁과 취업난,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 불안 등으로 생활에 여유가 없는 MZ세대에겐 30∼40년 뒤 받을 국민연금보다 당장 이번 달 내야 할 보험료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업장 가입자라면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4.5%)씩 보험료를 부담한다. 반면 그 외 지역가입자 등은 보험료 전액(9%)을 본인이 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보험료를 모두 부담하는 대표적인데,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1년 플랫폼 노동자 40%가 20∼30대로 추산됐다.
MZ세대를 설득하려면 법 조항 개정을 넘어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선 국가 재정으로 얼마나, 어떻게 국민연금에 지원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인 답을 내놓을 때다. 당장 출산 크레딧만 해도 필요한 재원의 70%는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당하고 정부는 30%만 부담한다. 출산 크레딧을 전액 국가가 지원하는 독일과 스웨덴 등 주요 국가들과 다르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를 국민연금 가입 기간 추가로 보상해 주는데, 그 부담을 다른 가입자나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 소득대체율이 적정한 수준인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3∼4월 시민대표단 492명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보험료율(현행 9%→13%)과 소득대체율(40%→50%)을 모두 올리는 ‘1안’과 보험료율(9%→12%)을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현행 유지(40%)하는 ‘2안’을 두고 숙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56.0%가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1안을 선택해 다수안이 됐다. 가장 젊은 연령대인 18∼29살에서도 53.2%가 소득 보장을 택했다.
국민연금 제도 안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기금 재정 부담을 고려해 보험료를 내는 가입 기간을 늘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후 소득을 보장하자는 방안도 있다. 현재 59살까지인 국민연금 의무 가입 연령을 64살로 늦추고, 크레딧 제도와 자영업자 등 사각지대 보험료 지원 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 30∼39살에선 소득보장(48.6%)보다 보험료율만 올리는 재정안정(51.4%) 방안을 고른 이들이 많았다. 이 경우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노후 소득 보장을 고민해 볼 수 있다.
“정책 의사결정권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도적 불안정성을 남겨놨는지 많은 의혹이 남습니다.”
생중계로 열린 공론화위원회 회의 마지막 날인 4월21일 한 20대 시민대표단이 남긴 소감이다. 그로부터 2주가량이 지난 5월7일, 공론화위원회를 열었던 제21대 국회 연금특위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다음 국민연금 재정 계산이 이뤄지는 2028년에 또다시 ‘○○년생부터 국민연금 못 받는다’는 이야기가 등장할 터다. 국민연금이 MZ세대로부터 신뢰받기 위한 방안들은 이미 나와 있다. 결국 신뢰는 그 방안을 실행하는 데에서 나온다.
글 / 한겨레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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