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개혁에 대한 세대별 불만
연금개혁, 특히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국민연금과 관련해 취재하다 보면 세대별 반응은 극명히 갈린다. 청년층에서는 “기금이 고갈돼 받지도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하고 “이득은 기성세대가 독차지하고 부담만 큰데 없애고 말자”는 극단적 반발도 적지 않다. 노년층은 또 그들대로 “쥐꼬리 만한 연금만으로 노후 생활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세대별 불만을 듣다 보면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연대라는 사회보험의 존재 이유가 무색할 정도다. 1988년 도입 이후 30여 년이 흐르며 국민연금은 되레 갈등과 반목의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 시간 동안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보험료율을 높이자는 주장과 세계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 명목소득대체율(은퇴 전 소득을 연금이 대체하는 비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격돌해 왔다. 정치권도 재정 안정과 노후 소득 강화를 놓고 갈라져 사회적 갈등은 증폭됐고, 그간 정부는 반발이 커 ‘표 떨어지는’ 연금개혁을 사실상 외면했다.
| 연금개혁, 제도 존속을 위해 올해에는 꼭 성공해야
최근 보건복지부의 언론 브리핑에 참여한 연금 전문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금개혁은 사실상 연금 삭감”이라고 단언했다. 개혁이라는 말은 그럴싸하지만 연금 재정을 안정화해 사회보험제도를 지속 가능케 한다는 뜻이 그 안에 내포됐다는 것이다. 보험료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축소한 선진국들의 연금개혁도 본질은 연금 삭감과 가까웠고,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두 번의 연금개혁이 있었는데, 1998년 1차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이 70%에서 60%로 축소됐고 수급개시연령은 60세에서 2033년에 65세가 되도록 단계적으로 조정했다. 2007년 2차 개혁 때는 소득대체율을 50%로 더 내렸고, 매년 0.5%포인트씩 계속 줄어들어 2028년에는 40%가 되도록 설정했다. 표피는 개혁이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은퇴 이후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깎인 게 맞다.
3차 연금개혁도 제도의 존속을 위해 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개혁의 속성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56년 고갈이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을 감안하면 보험료율 인상은 필수적이고, 소득대체율은 정부 개혁안을 감안할 때 40%로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다만 연금개혁을 미루고 미뤘던 시간이 쌓이며 개혁 필요성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저출생에 직면한 만큼 재정 안정이나 노후 소득 강화를 주장하는 양쪽 모두 더는 연금개혁을 회피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 올해가 골든 타임이고, 이번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연금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에도 이견이 없다.
| 정부가 발표한 연금 개혁안의 최대 쟁점은?
정부는 9월 초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2% 등 모수개혁안이 중심인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제시했다. 무려 21년 만에 정부가 내놓은 단일 개혁안이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의 결론과는 격차가 큰 소득대체율, 구조개혁을 의식해 포함한 듯한 연금액 ‘자동조정장치’ 등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지만 일단 치열하게 연금개혁을 논의할 판은 깔렸다.
보험료율 13%는 21대 국회 막판에 여야가 합의한 바라 다툼의 여지가 적어 보인다. 소득대체율은 논쟁이 불가피해도 정부가 제안한 42%가 마지노선인 셈이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을 여지가 있다. 인구구조 변화나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 등을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는 정부도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고, 예상 도입 시점도 빨라야 연금 급여가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는 2036년이라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할 사안이 아니다. 재정 투입을 늘리는 방식의 출산 및 군 복무 크레딧(납입기간 추가 산입) 확대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결국 최대 쟁점은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인데,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는 대의(大義) 앞에서 논의를 통해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에서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 연금개혁 과정에도 필요한 긍정적 사고
온라인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한 ‘럭키 비키’가 산업계, 공공부문 등 전방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Vicky)와 행운을 뜻하는 럭키(Lucky)를 합친 럭키 비키는 부정적인 일조차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과정으로 여기는 긍정적 사고가 가동될 때 따라붙는 감탄사다.
연금개혁 과정에도 럭키 비키가 작동할 수 있다면 어떨까. 기성세대는 보험료율 인상이 부담스럽겠지만 청년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내고 더 받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은퇴하기 전까지 보험료를 조금 더 납부해서 미래를 살아갈 자녀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면 럭키 비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청년들도 연금이 제 기능을 해 나중에 부모의 노후를 챙겨야 할 부담이 줄어든다면 그 또한 럭키 비키 아닌가. 정부도 연금에 재정 투자를 늘려서 노후의 보편적 삶이 개선된다면 다른 사회복지제도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누구는 덜 내고 더 받고, 다른 누군가는 더 내고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사사건건 부정적으로만 인식한다면 타협과 연대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17년 만에 찾아온 연금개혁의 기회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배려와 양보를 이끌어낼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급속한 고령화와 초저출생 쓰나미가 몰아치는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글 / 한국일보 김창훈 기자
*외부 필자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국민연금공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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