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으로 정부와 시민사회의 주장이 반영되면
여론에 휩쓸린 의사결정을 하고, 이는 수익률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수익률이 추락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경영에 간섭이나 하는 등
엉뚱한 데 관심을 쏟고 있다."
2018년 7월 30일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 도입을 앞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2018년의 낮은 수익률을 언급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재계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연기금의 투자수익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2018년에는 연간 수익률 –0.92%을 기록해 수조원의 손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저조했던 것은 연초부터 지속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약세가, 전체 자산의 약 35% 상당을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기금의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국민연금공단은 분석했습니다. 미중 무역협상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경기둔화 우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이슈 등으로 인하여 국내외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2018년 말에는 특히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실제 그 영향으로 일본, 미국, 네덜란드 등 글로벌 주요 연기금들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전체 국가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러한 우려 속에서 도입됐습니다. 해가 바뀌어 스튜어드십 코드가 주목을 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9년 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 수사였습니다. 한진그룹의 오너 리스크가 커지자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주주총회에서는 조 회장의연임 안건이 부결돼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반응은 엇갈렸는데요. 재벌 총수가 주주의 손에 퇴출당하는 첫 사례가 되면서 재계 보수진영에서는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반대로 진보진영에서는 재벌 개혁과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을 쐈다며 기뻐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시장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공감했다는 신호였습니다. 기관투자자가 의결권을 행사한 사례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조양호 회장 연임 부결 사건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금융위기가 감독기관의 실패와 함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반성과 함께 영국에서 등장했습니다. 금융위기의 문제점을 분석한 영국의 ‘워커 보고서’는 기관투자자의 방관으로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기관투자자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이사회를 견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이러한 목소리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이어졌습니다. 2010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영국에 이어 유럽을 중심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잇따랐고, 2018년 기준 전 세계 22개 국가(홍콩 포함)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습니다. 아시아에선 일본, 대만 등 9개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지배구조는 장기적인 위험요소로 지적돼 왔습니다. 대기업 오너들의 갑질, 횡령, 배임 등과 같은 각종 스캔들로 주주가치가 하락하면 연기금 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의 손실, 나아가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의 손해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연기금 운용사와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주총에서 반대표 행사는 매우 드물었고, 주주제안 등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었죠.
스튜어드십 코드를 반대하는 쪽에선 수익률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목적은 ‘수익률 제고’입니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제4항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 대상과 관련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기금운용지침에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도입하고 기금운용위원회가 별도로 정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따라 이행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6대 원칙인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지속가능성, 운용 독립성의 틀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9년 3월께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은 기업의 중대한 위법 행위 등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손해를 끼칠 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주주 활동을 이행하며,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대다수 기업은 주주 활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안효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 “배당확대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향상시킬 여지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국가들의 기업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보고는 수차례 나왔습니다. 유진투자증권이 2017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가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대표지수인 FTSE 100의 주가수익률(PER)은 2017년 4월 기준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 대비 97% 상승한 33.2배(도입 이전: 16.9배)로 나타났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네덜란드의 PER도 각각 63%와 60%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도 증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018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발표일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을 지배구조 수준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으로 구분해 비정상 누적평균수익률(CAAR : Cumulative Average Abnormal Return)*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배구조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CAAR이 1.19%(지배구조 수준이 높은 기업의 CAAR은 0.46%) 상승했습니다. 이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일부 기업의 시장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시장참여자들이 향후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주주 가치가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한 결과입니다.
* 비정상수익률은 실제 수익률과 균형 하에서 기대되는 정상수익률과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수익률을 의미. 특정 사건에 의해 발생한 수익률의 변동 부분을 측정한 것.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
지배구조가 우수하다는 것은 기업 내부에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는 의미로,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을 흔히 지배구조 수준이 높다고 표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후 첫 해였던 2019년에는 연금 기금 수익률이 11.3%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잠정 수익금은 73.4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1년간 보험료 수입 보다 수익금이 더 많을 정도로 큰 수익금입니다. 이로써 국민연금 설립 이후 누적 수익금이 367.5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졌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투자수익률이 낮아질 것이라 내다봤던 전망이 2019년에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란 명제 또한 입증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수익이 컸던 것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덕분이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중장기 수익률을 높일 목적으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이유는 되지 않을까요?
글 / 이재호 기자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사회팀 기자. 2018년 8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 수상.
21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외부 필자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국민연금공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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